장애인의 발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나이
수제화 경력 36년, 장애인 신발 전문가 김완중 씨의 하루
윤경희의 쪽빛희망
' 명광 등산화연구소' 서울시 강북구 미아5동에 자리한 이곳엔 뭔가 아주 특별한 것이 있다. 하루에도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 꼭 이곳을 드나든다. 이곳에는 수제화 경력만 36년째인 신발 제작의 마술사 김완중 씨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장애인을 아끼는 그의 배려와 자부심이 있고, 편안한 신발을 갖게 된 장애인들의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아 언제나 행복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이 '연구소'의 주요 고객은 장애인들이다. 장애인 중에서도 복지시설 등에 있거나, 국가보조금으로 생활을 하는 등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지 않은 '손님'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김씨의 신발 만들기 '신공'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 각 개인의 장애 특성에 맞는 신발을 혼자 묵묵히 연구하고 만들어 왔다. 점점 소문에 소문을 타고 번졌고,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장애인들이 찾아들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용 전문 신발이 시중에 거의 없는 까닭에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는 크나큰 기쁨이다.
사진 / 윤경희
그가 신발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동기는 이렇다. 그는 1970년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물론 이유는 어려운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그는 구두 공장을 전전하며 기술을 익혔다. 그런지 10년만에 그는 자신만의 가게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그후로도 그에게 신발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장애인용 신발었다.
수제화 가게인지라 오다가다 몇몇 장애인 손님들이 들르곤 했다. 등산이나 운동을 하고 싶어도 불편한 신발 때문에 남모르게 어려움을 겪는 손님들이었다. 그의 굳은 자부심과 직업의식은 아주 편한 장애인 신발을 새롭게 만들게 했다. 장애인 손님들은 그의 야무진 솜씨에 만족했고,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손님들도 하나 둘 숫자가 늘어갔다.
그는 꾸준히 10년 가까이 한 해에 20명 정도의 장애인에게 무료로 신발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결코 선행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당연한 일로 여겼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불편한 몸이 더 불편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오로지 발에 아주 잘 맞고 편한 신발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입소문은 무서웠다. 장애인공단까지 흘러들어간 소문은 '정부보조금'으로 되돌아왔다. 공단의 무료신발 보조금 지원제도에 따라 장애인 1명당 2년에 1회씩 무료로 신발를 만들어 즐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장애인에게 신발을 만들어 주면 그는 17만2000원을 공단으로부터 받는다, 일반 등산화 한 켤레는 그의 가게에서 22만원이다. 5만원을 알아서 깍아 주는 셈이다. 물론 무료로 신발을 만들어 주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도 벌써 1년 남짓한 시긴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정보를 모른 채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신발 앓이를 하며 살아가는 장애인이 대부분이다. 그는 이 점이 너무 안타깝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좋은 제도가 있는데도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혜택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많다. 더군다나 비싼 돈까지 부담하면서 불편한 신발을 신고 다니는 장애인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사진 / 윤경희
그가 이처럼 '특별한 신발' 을 저렴하게 무료로 장애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에게는 이미 20여 가지의 신발 모형틀(나스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모형을 개별적으로 따로 만들려면 각각 15~30만원의 제작비가 별도로 들어간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그는 보편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면서도 꼭 필요한 모형만을 확보하게 되었다. 고유의 노하우가 담긴 그만의 보물인 것이다. 장애인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모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그러니 당연히 비용을 많이 절감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기계 작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여기서 설비 값이 빠진다.작업도 약 30년 동안 혼자 해오고 있다. 대부분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몸은 늘 고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줄어든 인건비는 장애인들에게 고스란히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럼 그가 신발을 만들며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장애인 개개인의 발 모양을 고려, 굽의 종류와 높낮이, 알맞은 균형까지 잘 맞추어 신발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간혹 몇몇 고집 센 손님들이 일반인의 신발처럼 예쁜 모양을 요구해 그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는 그의 신발을 한 번 신어 본 장애인들은 '진작에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편하게 살았을 것' 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지방에서 소문을 듣고 아름아름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제법 먼 길을 재촉해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 이들은 작은 정성이지만 음료수를 가져와 내밀곤 한다. 이런 고마운 마음을 대하노라면 그는 피곤도 잠시 잊는다.
사진 / 윤경희
때마침 가게에는 월곡동에서 온 배병학 씨가 있었다. 1984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그는 혼자 살아왔다. 월 35만원의 국가보조금이 그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란다. 김씨가 무료로 신발을 만들어 준다는 반가운 소문이 그의 발걸음을 여기까지 인도했다. 그가 만난 김씨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 요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불편함을 미쳐 몰라주는 세상에서 김씨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김씨가 '그저 고마울 따름' 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씨는 또 퍽이나 산을 잘 타는 유명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그의 산악인 경력은 2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이다.한 때 한국등산연합회 가이드로 활약 또한 활발했다. 히말라야 암벽등반 7회와 후지산 등 다수의 유명 산들을 내 집처럼 오르고 내렸다.요즘은 신발 만들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등산할 여유가 거의 없어 종종 아쉽다.
혹시 수제화 만드는 일에 대해 남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에게 물었다.그러자 그의 대답은 역시 산사람답게 멋지고 듬직하다.'나는 일본 사람들처럼 이 일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그래서 대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며 환한 웃음까지 지으며 말한다.
그의 36년 노력과 열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허름한 작업장과 장인의 정성이 담긴 주인을 기다리는 신발을 보며, 그의 신발 사랑, 변함없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 또한 한결같이 곧게 이어지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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